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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을 강요당한 정의: 심기열 신부 사례로 본 한국 천주교회의 민낯

꼬미미팍 2025. 6. 11. 18:04

침묵을 강요당한 정의: 심기열 신부 사례로 본 한국 천주교회의 민낯

최근 천주교 대구대교구에서 발생한 심기열 신부의 면직 사건은 한국 천주교회가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뼈아픈 성찰의 계기가 되어야 마땅합니다. 이 사건은 단순한 인사 문제가 아니라, 교회 조직 내부에 만연한 권위주의와 불의에 눈감는 폐쇄적인 문화, 그리고 무엇보다 중대한 비위를 저지른 이들에게는 관대하면서도 정당한 목소리를 낸 이에게는 가혹한 처벌을 내리는 이중적인 잣대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심기열 신부의 시련은 2021년 말, 그가 보좌로 있던 본당 주임신부의 직무 태만을 교구에 알리는 용기 있는 행동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미사나 사목 활동은 뒷전이고 골프와 당구에만 몰두하는 상급자의 모습을 보고, 사제로서 양심에 따라 문제를 제기한 것입니다. 그러나 교구의 반응은 문제 해결이 아닌 문제 제기자에 대한 조직적인 압박으로 나타났습니다. 교구 성직자국장조차 법정 증언에서 심 신부의 문제 제기를 '일반적이지 않다'고 평가절하했음이 확인되었는데, 이는 교회가 아래로부터의 비판을 얼마나 불편하게 여기는지를 보여줍니다.

 

이후 교구는 심 신부를 고립시키고 침묵시키기 위한 일련의 조치들을 취했습니다. 2022 3, 교구청 총대리주교는 이메일을 통해 심 신부에게 '억압된 감정이 있으니 심리 상담이 필요하다'고 통보했습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의사의 직접적인 진단 없이 정체불명의 내부 '자문단' 의견만을 근거로 '편집성 성격장애'가 의심된다는 낙인을 찍었다는 점입니다. 사제를 직접 만나보지도 않은 익명의 자문단이 내린 일방적인 판단은 인권 침해의 소지마저 다분합니다.

이러한 낙인을 근거로 교구는 심 신부에게 일방적인 '휴양' 명령을 내렸습니다. 휴양의 이유로 제시된 근거들은 더욱 황당하기 그지없습니다.

 

첫째는 14년 전 신학교 입학 당시 받았던 인성검사 결과 중 일부 부정적인 소견이 최근 악화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해당 인성검사에는 정신질환 가능성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었고, 심 신부님은 정상 범위 판정을 받고 입학했음에도 불구하고 교구는 오래전 검사 결과 몇 줄을 억지로 끌어와 현재 심 신부님이 '융통성이 부족하고 거짓말을 한다'는 식으로 몰아갔습니다.

 

둘째 이유는 새로 전보된 본당에서 50대 여성 신자의 호의로 자동차 편의를 얻어 탄 것을 두고 '여성 신자와 지나치게 접촉했다'는 주임신부의 투서를 빌미 삼은 것이었습니다. 코로나로 본당 활동이 위축된 시기, 답답해서 카페에 다녀온 것을 마치 큰 물란이라도 있었던 양 문제 삼은 것입니다. 이러한 빈약하고 자의적인 근거들로 내려진 휴양 명령은 결국 심 신부를 조직에서 격리시키고 입막음하려는 조치나 다름없었습니다.

 

심 신부는 자신이 '멀쩡함'을 증명하기 위해 8개월간 여러 병원과 심리상담센터를 전전하며 검사를 받았습니다. 그 결과 어느 곳에서도 치료가 필요한 정신질환이 없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교구는 이러한 객관적인 진단 결과에도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교구가 지정한 특정 정신과 의원에서 치료를 받지 않았고, 치료 상황을 보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어 그를 '불순명'했다고 규정했습니다. 결국 2022 12, 교구는 심기열 신부님에게 가차 없이 면직 처분을 내렸습니다. '윗말을 절대적으로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 하나로 한 사람의 인생을 징벌한 것입니다. 설명도 없이 '미친 사람' 취급을 당한 채 쫓겨나듯 면직된 심 신부님은 "누구 하나 도움을 안 줬다. 내가 강에라도 뛰어들면 이 고통이 끝날까 생각했다"고 토로할 정도로 극심한 좌절을 겪었습니다. 이는 신앙 공동체에서 벌어졌다고는 믿기 힘든 비인간적인 조치이며, 세속 독재 정권이 반체제 인사를 정신병자로 몰아 탄압하던 수법을 떠올리게 합니다.

 

더욱 개탄스러운 것은, 심기열 신부에게 적용된 이 가혹하고 비상식적인 잣대가 정작 훨씬 중대한 비위를 저지른 다른 성직자들에게는 전혀 다르게 적용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첨부된 파일에 따르면, 대구대교구에서 지난 20여 년간 면직된 사제는 심 신부님을 포함해 단 세 명뿐이며, 그중 둘은 여자 문제와 금전 문제로 인한 것이었습니다. 심지어 다음과 같은 심각한 범죄를 저지른 사제들도 면직만은 면했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        미성년자 성추행으로 징역 3년형을 선고받은 신부: 법원에서 실형을 선고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교회 내 처벌은 면직이 아닌 '정직'에 그쳤습니다.

·        교구 산하 법인 여직원을 성추행한 신부: 이 신부 역시 면직되지 않았고, 교구 차원의 징계조차 경미한 수준에 머물렀습니다.

·        노래방에서 여성 도우미와 술판을 벌여 품위를 훼손한 신부: 한때 정직 처분을 받았으나 이후 본당 주임신부로 복귀했습니다.

 

 

이처럼 미성년자 성추행, 직장 내 성추행, 성직자 품위 훼손 등 사회적으로도 엄중하게 다루어져야 할 범죄를 저지른 성직자들에게는 관대하거나 제 식구 감싸기에 급급했던 교회가, 정작 내부의 부조리를 고발한 사제에게는 '불순명'이라는 올가미를 씌워 가혹하게 내쳤다는 사실은 한국 천주교회 내부의 정의의 저울이 심각하게 기울어져 있음을 보여줍니다.

2022 11 22일자 대구대교구 참사회 회의록에 "정직을 거쳐 면직까지 가려면 근거 대기가 어렵다" "차라리 바로 면직부터 내리자"고 결정했다는 내용은, 절차적 정당성이나 객관적 근거보다는 문제 인물을 제거하는 데만 급급했던 조직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심기열 신부의 사례는 한국 천주교회가 스스로의 도덕적 권위를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음을 경고합니다. 복음의 가르침인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는 말씀은 진실을 말한 자를 옥죄어 내쫓는 현실 앞에서 공허하게 울려 퍼집니다. 약자를 돌보고 상처 입은 자를 치유하기는커녕, 제도 유지를 위해 내부 고발자를 정신병자로 몰아 제거하는 공동체라면 그것은 더 이상 건강한 종교라 부를 수 없을 것입니다. 신자들은 교회에서 위로와 정의를 기대하지만, 제도권 교회는 자신의 권위를 흔드는 이들을 병자로 취급하며 배척하는 윤리적 일탈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 천주교서울대교구 사제 서품식 장면

결론적으로, 심기열 신부 한 사람에게 가해진 부당한 낙인은 사실 한국 천주교 조직 전체에 찍힌 불명예의 낙인이나 다름없습니다.

 

죄 앞에서는 관대하고 내부 비판에는 옹졸한 이중적인 태도는 교회의 신뢰를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한국 천주교회가 진정으로 신뢰를 회복하고 복음의 가르침에 충실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폐쇄성과 권위주의를 극복하고, 모든 구성원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투명하고 정의로운 원칙을 세우는 근본적인 자정 노력이 시급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