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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교황 레오 14세에 대해

레오 14세 교황: '가교'는커녕 ''만 쌓는 건 아닌지

새 교황 레오 14세가 선출되었을 때, '가교를 놓는 자'라는 그의 별칭과 미국 출신에 페루 빈민가 봉사 이력까지 더해져 많은 이들이 가톨릭 교회의 새로운 변화를 기대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그가 놓는다는 '다리'는 과거의 잘못을 덮고 기득권을 공고히 하는 방향으로 놓이는 듯해 씁쓸함을 감출 수 없습니다. 개혁의 이미지 뒤에 숨겨진 그의 진짜 얼굴은 무엇일까요?

교황 레오 14세가 성 베드로 광장에서 교황 취임식을 거행하고 있다. 출처: 게티

성범죄 은폐 의혹, 이쯤 되면 '고의' 아닌가

가장 먼저 터져 나온 성직자 성범죄 은폐 의혹은 정말 충격적입니다. 과거 수도회 지도자, 주교, 심지어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으로 일하면서도 수많은 성범죄 사건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고 덮으려 했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죠. 피해자 보호는 뒷전이고 교회의 위신만 생각했다는 건데, 이게 과연 '실수'일까요? 여러 차례 반복된 패턴을 보면, 이건 거의 '고의'에 가깝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성학대 피해자 단체들이 그의 선출을 '모욕'이라고까지 표현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겁니다. 이런 분이 교회의 수장이 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가톨릭의 도덕성에 큰 의문을 던집니다.

 

바티칸 재정, 블랙홀인가?

바티칸의 재정 불투명성은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돈세탁이니 부패니 하는 스캔들이 끊이지 않았죠. 그런데 레오 14세는 오히려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보다는 투명성을 더 가리는 듯한 행보를 보입니다. 교회 자산 운영 내역 공개는커녕, 회계 부서 인력 감축에 투명성 보고서 비공개까지... 대체 뭘 숨기려는 걸까요? '가난한 자와 함께해야 한다'는 교황의 메시지가 공허하게 들리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막대한 자산을 투명하게 관리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세상의 빈곤과 불의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겠어요? 도덕적 권위는 투명성에서 시작됩니다.

 

평신도와 여성은 '들러리'인가

프란치스코 전 교황이 평신도, 특히 여성의 교회 참여를 확대하려 했던 시도는 분명 긍정적이었습니다. 하지만 레오 14세는 이런 흐름에 대놓고 제동을 거는 모습입니다. 평신도와 여성의 발언권 확대에 "신중해야 한다", 이게 21세기에 할 소리인가 싶습니다. 교회 핵심 결정기구인 콘클라베에 여성이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은 교황청이 얼마나 시대착오적인 권위주의에 갇혀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성직자 중심의 아포스톨 전통'을 강조하는 그의 모습에서 개방과 소통보다는 폐쇄와 통제만을 보게 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어렵게 시작한 개혁의 발목을 잡을 거라는 우려가 괜히 나오는 게 아니죠.

 

사회 정의? 말뿐인 외침

레오 14세가 사회 정의에 힘쓴 레오 13세의 이름을 따왔다는 건 아이러니입니다. 환경 문제, 빈곤 퇴치, 노동권 보호 등 그럴듯한 메시지는 던지지만, 정작 교황청의 행동은 따라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환경 단체들이 "선언만 하고 투자는 그대로"라고 비판하는 것처럼, 말과 행동이 다른 모습은 위선으로 비춰질 뿐입니다. 교황청이 가진 막대한 자산과 영향력을 생각하면, 단순한 선언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책임감 있는 행동을 보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의 사회 정의 메시지는 그저 공허한 외침으로 남을 겁니다.

 

진정한 쇄신은 가능한가

레오 14세 교황은 '다리를 놓는 자'가 아니라 오히려 교회와 세상 사이에, 그리고 교회 내부의 다양한 목소리들 사이에 ''을 쌓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심각하게 되돌아봐야 합니다. 성직자 성범죄 은폐, 재정 불투명성, 평신도 배제, 말뿐인 사회 정의 메시지... 이 모든 문제들은 교회가 더 이상 침묵과 은폐로 버틸 수 없음을 보여줍니다.

교황청은 지금 중대한 기로에 서 있습니다.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고 투명성을 확보하며 모든 구성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진정한 쇄신의 길로 나설 것인가, 아니면 기득권에 안주하며 도덕적 권위를 스스로 무너뜨릴 것인가. 레오 14세 교황은 이제 말 대신 행동으로, 침묵 대신 진실과 책임으로 답해야 할 때입니다. 그의 선택에 따라 가톨릭 교회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